커피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아니면 네모난 커피 믹스 봉지. 그때는 그게 내가 알던 커피의 전부였다.

1998년 명동, 매서운 칼바람을 맞고 서있길 삼십 분. 참다못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눈 앞 이름 모를 대형 커피숍의 문을 열었다. 열아홉 살이었던 내게 그 커피숍은 고급 호텔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어렵고 수줍었다.

카운터 앞에 서서 메뉴를 훑었다. 왼쪽 중간 즈음에 위치했던 에.. 스… 프레.. 소. 생소하지만 가장 저렴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어 더듬더듬 어려운 주문을 했다.

몇분 후 커피가 나온 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커피 잔만 유난히 작았고, 제일 싼 커피를 주문한 것이 티가 나는 것 같아 창피함이 밀려왔다.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커피의 맛을 보았다. 아뿔싸…… 쓰다. 물과 설탕을 타고 싶은데 물 말아먹는 촌놈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커피숍을 나오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과 커피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다음 해, 서울 도곡동의 작업실로 이사를 했다. 다방이 없어지고 무수히 생겨나는 커피숍이 보였지만 한동안은 커피숍이 끔찍이 싫었다. 어쩌면 에스프레소의 쓴 기억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이 아닐까……

# 서른 중반, 선선하지만 볕 좋은 파리의 노상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주문하면 당연한 듯 에스프레소와 설탕이 나온다. 머무는 두 달 동안 하루에 두 번은 설탕을 듬뿍 넣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 마흔을 맞이할 즈음, 네스프레소와 스타벅스가 일상이 되었다.

모든 것이 서툴고 어리숙했던 10대와 20대의 기억들은 흩뿌려져 단편들만 남았다. 그래도 가끔씩 꺼내볼 수 있는 짙은 첫 기억들이 있다. 내게 커피숍, 카페, 에스프레소라는 첫 기억은 그 겨울의 명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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