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2208, 장마와 퇴사

조용히 지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음악을 하거나 교육 콘텐츠 사업을 하는 아는 조금 지인들이 있다. 최근 4 반을 IT 기업에서 PM 기획•디자인 팀장으로 보냈다. 그간 기획하여 런칭 시킨 서비스와 앱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이용 중인 서비스도 있다. 그만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잠시 한숨을 돌리고 새로운 것을 다시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다. 우아한 가난은 없다. 하지만 그래왔듯 내가 하고 싶은 , 있는 다른 것들을 찾아가려고 한다.

장마가 끝날 즈음 퇴사를 했다. 회사와 간단치 않은 관계라서 퇴사를 위해 1년 반 동안 세 번의 전쟁을 치렀다. 고생해서 만든 팀과 팀원들, 나쁘지 않은 연봉과 괜찮은 평판을 받았지만 퇴사까지 갔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된 직장인으로 살아본 최근 몇 년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스스로를 너무 소모하면서 번아웃을 여러 번 겪었고, 그 대가는 내가 치러야 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식적으로나 건강이 나뻐졌다. 앞만 보며 달리던 시선이 나 자신을 향했다. 무엇을 위해 지금처럼 일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눈덩이처럼 커져있었고, 균형을 잡는 과정은 어려웠다.

퇴사 후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라고 아내가 제안했다. 솔깃한 제안이지만 자신이 없었다. 외로움과 불안감에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무엇을 할지는 모르지만 가벼운 출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먼저 구했다.
퇴사를 했다고 피부가 좋아지거나 살이 술술 빠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일요일 오후부터 기분이 안 좋아지는 루틴이 없어졌다. 아이들의 등하원을 나눠서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좀 더 늘었다.

창이 크고 볕이 좋은 사무실을 계약했다. 공유 오피스의 2인실 한 칸이다. 창밖 빌딩 사이로 우리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가 살짝 보이고 근처에는 매머드 커피와 스타벅스가 있어 출근길에는 쉽게 커피를 살 수 있다.
창밖을 바라보면 걱정이라는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거창하게 사무실까지 계약했으니 나무라도 뽑아보기 위해 오늘도 내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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