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1612

보우강 근처를 지나는 기차의 경적 소리가 창 틈새로 나지막이 새어든다.
사람, 풍경, 소리, 해가 뜨고 지는 느낌 조차 다른… 캐나다에서 가족과 함께 수줍게 지내고 있다.

#걱정

지금쯤 지하주차장에 있는 자동차 배터리는 이미 방전되었을지 모른다. 집에 도둑은 들지 않았을까, 달라질 것도 없는 걱정에 붙잡힐 때가 있다. 그래도 옆집 아저씨에게 인사는 하고 올 걸 그랬다. 결국 또 쓸데없는 걱정이다.

#일상

한국에 있을 때와 별다르지 않게 일을 하고 있다. 한국 시간 기준으로 연락과 메일이 오다 보니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날이 많다. 게다가 새벽에는 한 달 남짓의 갓난아기를 아내와 교대로 돌보느라 어제와 오늘의 경계마저 없어진 요즘이다. 부모로서 이제 막 출발선에서 첫 발을 내디뎠지만, 육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경험

교통 체계가 한국과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직진 중 교차로에 신호가 따로 없고 정지 표지판이 있는 경우 먼저 정지한 차가 우선 출발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끼어들기 위해 눈치를 봐야 했지만, 여기서는 내가 잘 지키고 있는지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도 한두 번 운전을 하고 난 뒤부터 혼자 병원을 다녀오기도 하고, 마켓몰로 커피를 사러 다녀오기도 한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타국에 있을 때 느끼는 첫 번째, 걱정과 두려움이 깨지는 건 역시 한순간이다.

#연말

방심한 사이, 스피드건을 들고 과속 딱지라도 끊을 기세의 나이 한 살을 마주해야 하는 연말이 되었다. 숫자가 중요치는 않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8760시간이나 되는 일 년이 결코 여유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천진난만함이 가득한 연말은 더 이상 없겠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기다려진다.

#블로그

트위터의 느슨함이 좋았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달랐다. 간단할 수 없는 무수한 인간관계가 온라인까지 밀접히 연결되고, 진실과 진심을 알 수 없는 사진과 대화들이 내 정서를 짓눌렀다.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을 다른 방식으로 어딘가에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커졌고 결국 지금의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과 관심사를 기록하고 싶었지만,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외향적 블로그를 어줍지 않게 흉내 내면서 결국 헤픈 블로그가 되어버린 것 같다. 켜켜이 쌓인 사진과 에버노트의 글들은 더 잘하고 싶은 의욕과 부족함이 눈에 밟혀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진행 중 상태로만 있고, 그런 부담이 늘다 보니 초등학생의 의욕뿐인 방학 시간표 마냥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부디 내년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기록을 즐길 수 있길 스스로에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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