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키보드와 마우스에 관심이 있는 개발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개발자에게 기계식 키보드는 마치 할리데이비슨 라이더의 가죽 재킷과 같아 보였다. 키보드를 주제로 뜨거운 토론이 시작되기라도 하면 리얼포스, 레오폴드, 해피 해킹, 청축, 갈축, 무접점과 같이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한 쪽 귀로 들어와 반대편 귀로 빠져나가는 그저 다른 세상의 단어들이었는데 이십 년 동안 사용한 애플 키보드를 벗어나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관심이 생기면 관련된 것들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개발자의 타이핑 소리가 유난히 크게 틀리기 시작하더니 ‘타이핑은 개발자보다 내가 더 많이 하지 않나?’하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소위 지름신이 와버렸다. 어릴 때 사용하던 IBM 컴퓨터의 기계식 키보드 이후 사용해본 적조차 없다 보니 주변 개발자들에게 질문도 해보고 출퇴근 길에 수없이 검색을 하게되었다.
애플 키보드와 동일한 키 배열의 기계식 키보드에 타이핑 소음이 크지 않고, 디자인이 좋은 제품이어야 한다는 몇 가지 조건을 만들었다. 맥을 위한 기계식 키보드로는 키크론 제품이 가장 많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리뷰 글들을 찾다 보니 단점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제품들을 구입할 때 인기가 가장 많은 제품일수록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의 제품이나 마케팅의 성공으로 인해 알려진 제품보다는 기능이나 디자인 중 무엇 하나만은 특출난 제품이 좋다. 최종적으로 몇 가지의 키보드를 후보에 올려놓고 결정을 못 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고민이 귀찮아 충동적으로 바밀로(VARMILO) VA87MAC 밀키 화이트 저소음 적축을 덜컥 구입했다. 애플 키보드와 유사해 보이고 흰색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쁘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이쁘다. 애플 파워맥 G5의 A1048 키보드가 생각난다. 애플 키보드와 동일한 기능 키를 갖고 있어 밝기 조절, 미션 컨트롤, 런치패드, 애플 뮤직 제어, 볼륨 제어가 모두 가능하다. 헌트 앤 펙 타이피스트(독수리 타법)이다 보니 오타가 많은 편이라서 조금 걱정을 했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백스페이스키를 가장 많이 누르긴 한다.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인데, 다른 기계식 키보드의 무게를 몰라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애플의 키보드에 비해서는 상당히 무거운 편이고 바닥에 안정적으로 잘 고정된다.
적축, 갈축, 청축 같은 축 방식에 대해 잘 모르지만 무소음 적축이라 그런지 소음은 적고 타이핑의 느낌은 부드럽고 쫀득하다. 높이 조절 받침대를 펴서 높이를 올리면 타이핑 사운드가 완전히 달라진다. 편안함을 위해 높이를 올리고 싶지만 커지는 소음과 함께 바디의 묵직함이 사라지는 것 같아 높이를 낮추고 사용하고 있다. Return 키를 세게 칠 때가 있는데 유난히 소리가 크고 간혹 스프링 소음이 들리기도 한다. 윤활유를 이용해서 스프링 소음을 줄일 수 있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정성을 들이고 싶진 않다. 4단계로 밝기 가능한 키캡 하단의 LED는 유치하지 않고 꽤나 근사하다. LED는 숨쉬기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맥에서는 사용이 안 된다.
애플 제품과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보니 다른 키보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 더 구입하여 집에서도 쓰고 싶은데 두 사내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보니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파워맥 G5의 A1048 키보드가 생각나는 키보드, 저소음, 깔끔한 흰색 기계식 키보드를 찾는 분이라면 VA108MAC이나 VA87MAC 밀키 화이트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