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듯이 내리쬐는 햇볕, 습기 가득한 이불, 땀 냄새 풀풀나는 여름이 싫었다. 털이 송송난 다리에 버켄스탁 슬리퍼를 신고 일을 가기도 하고, 점심은 밥 대신 냉면을 먹었다. 입이 섬세하지 않은 주제에 이 집 육수와 면은 이렇다 저렇다 말은 많았다.
보통의 여름이 올해는 조금 달랐다. 여름빛이 청량하고 명쾌하기도 했고, 들뜬 밤공기가 좋아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리기도, 비 오는 주말이 유난히 많아 창밖 풍경을 조금 더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기도 했다. 하긴,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린 에어컨이 있기에 이 정도의 여유도 부리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시원섭섭한 여름이 지나갔다. 아침마다 콧물이 주르륵 흐르기에 지르텍을 챙겨 먹어야 하는 가을의 공기가 몸을 스친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심지어 밖에 나갈 때면 항상 가디건을 걸치고 나간다. 린넨 재킷과 자주 입지 않는 반팔 셔츠들은 옷장 구석진 곳으로 들어간다. 몇 주 사이 여러 벌의 셔츠와 니트, 가디건, 재킷을 구입했다. 갑자기 드는 생각이지만, 이틀 전 구입한 그레이 컬러의 트위드 재킷은 정말 잘 산 것 같다.
자연스레 가을과 마주하고 있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가을이다. 그리고 올해의 첫 휴가가 있는 가을이다.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