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첫 번째

백화점을 거닐다 그림 한 점이 우리를 붙잡았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나무 아래에 피어난 장미 나무’다. 가로 1m가 훌쩍 넘고, 질감까지 그럴싸한 레플리카다. 우리는 후회 없을 충동구매를 했다.

 

변화, 첫 번째
여러 곡절로 늦은 봄 사무실을 이전했다. 상암동 MBC 앞 건물이고 채광과 경치가 좋다. 녹음실 없는 사무실은 처음이다. 프로젝트의 상황에 따라 렌탈 녹음실을 이용하는 게 이득이다. 이전 녹음실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아내와의 추억 또, 주변 뮤지션들과의 추억이 많았던 공간이라 떠나는 발걸음은 섭섭하지만, 여러모로 잘 된 일이고 후련하다.
새 사무실은 광교에서 다니기에 꽤나 멀다. 하루에 적어도 세 시간 정도를 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 우리는 여러 생각 끝에 반 재택근무를 선택했다. 고정된 공간에서 복닥거리며 업무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클라우드 서비스와 이메일로 대부분의 자료를 공유할 수 있기에 항상 사무실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회의나 미팅, 외부 스케쥴이 있지 않으면 집에서 일을 한다. 부부가 재택근무를 할 경우 피할 수 없는 불편함도 있지만 좋은 점은 더 많다. 다만, 긴장된 옷차림을 위한 시간이 점점 줄어 아내는 불만이다.

 

변화, 두 번째
음악 일은 접어둔 채 새로 론칭할 앱의 기획, 디자인으로 몇 달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보냈다. 모든 작업을 직접 했다. 개발사에 기획서와 디자인 파일을 넘긴 뒤 대표형께 한 마디 했다. “이 작업은 저와 안 맞는 것 같아요. 다신 하고 싶지 않네요.” 투정일 뿐이다. 이미 코는 꿰어졌다. 내년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보인다. 빨간색 배경 위 고래 아이콘과 함께.

 

변화, 세 번째
여름이 지나기 전 YDG의 싱글 음반이 발매되었다. 2년 전에 만들고 녹음했던 곡이다. 트랜디한 장르의 음악이다 보니 너무 늦게 릴리즈 되면서 시대를 역행한 꼴이 되어 혹평을 꽤나 받았다. 요즘은 곡을 쓰지 않고 있다. 가끔씩 편곡 일은 있는데, 그것도 그리 즐겁지 않다. 좋아하는 음악과 잘할 줄 아는 음악의 갈등 사이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아쉬움이 남지 않느냐란 말을 많이 듣지만, 할 일이 많아 향수병 없이 바쁠 뿐이다. 희망사항이겠지만, 다시 작업 소식을 전할 즈음에는 지금까지 발표했던 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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