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해가 빨리 지고, 서쪽 아파트 사이로 분홍색 구름이 흐른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기 전 조명을 켜야하고, 늦은 밤 자전거를 타면 “춥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김없이 가을은 왔다.
취미
초등학교 6학년 소풍, 힘들게 허락받았기에 애지중지 목에 걸고 다녔던 아버지의 미놀타, 스무 살 무렵 가방 속 감성팔이 로모, 렌즈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던 캐논 F-1, 니콘 FM2. 하지만, DSLR이 보급되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당시 DSLR을 사기에는 부담이었고, 필름 카메라를 계속 사용하기에는 구식 같아 보여서였는지 자연스레 멀어졌다. 당시의 니콘, 캐논, 미놀타, 야시카, 로모, 폴라로이드 카메라들은 장식품으로 쓰고 있다.
시작은 출장이었다.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DSLR을 만지게 되었고, 다시 사진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캐논 5Dmk2와 두 개의 렌즈로 공부하듯 사진을 찍고 있다. 쉬이 셔터를 누르는 건 좋지만 사진 정리와 보정은 여간 성가시다. 게다가 적녹색약이 있어 색상 수정이 소심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아내의 믿음직한 의견과 응원이 도움이 된다. 포토그래퍼로 직업을 바꿔보는 건 어떻겠냐는 우스갯말이나 소니 A7r을 사주겠다는 아내의 빈말 마저 사랑한다.
포기
2년을 탔다. 처음 구입했던 신차라 그런지 더욱 애착이 컸다. 타국에선 흔하지만, 국내에서 드문드문 마주치면 반가울 정도다. 별 탈 없이 추억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나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모든 자동차는 언젠가 구형이 되지만, 인정하는 순간 권태가 재촉되며, 신형을 직접 보는 순간 생길 부러움은 불 보듯 뻔하다. 권태의 시작일까, 요즘 유난히 길거리의 미니(BMW)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내는 말한다. “큰 차 타다 작은 차 타면 불편할 거야.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나에게도 차가 필요하겠지?” ‘아뿔싸, 마음 접고 열심히 저축해서 아내의 미니를 구입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이내 곧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