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뮤다 더 브루, 더 레인지

에어프라이어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2011년부터 필립스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했다. 바스켓이 낡아 일본 직구로 바꿔 쓰기도 했지만 지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커지면서 바꾸기로 했다.
지난 가을, 아내와 백화점을 기웃거렸다. 삼성 큐커와 엘지의 광파오븐을 비교하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중에 발뮤다 매장을 들렀다. 더 레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두 눈으로 보니 깔끔한 디자인에 마음이 요동쳤다. 에어프라이어 기능을 오븐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지만 오븐을 더 좋아하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를 대체할 기기를 구입하려고 쇼핑을 나갔는데 더 브루까지 함께 구입하게 되었다. 두 개의 기기를 6개월 이상 사용하고 글을 쓴다.

더 레인지

사실, 기능보다는 디자인 때문에 선택했다. 발뮤다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더 토스터가 생각나는 디자인이다. 전자레인지와 컨벡션 오븐의 기능을 갖춘 주방기기로 삼성 큐커나 엘지 광파오븐과 비교하여 가장 큰 차이점이자 단점은 에어프라이어가 기능이 없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사용하던 풀사이즈 오븐에 비하면 반쪽자리지만 18리터로 치킨도 들어가는 정도이고 주방 싱크대 위에 두기에 거대한 크기는 아니다. 오븐 사용 시 트레이의 높이를 2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트레이 안에 그릴을 올릴 수 있다. 내부를 보면 상단에만 히터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단에도 히터가 있다. 보통의 오븐과 같이 온도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오븐 기능에는 발효 기능이 있어 홈 베이킹에 도움이 된다.

요즘 전자레인지처럼 회전판이 없는 플랫 테이블 형태라서 원형 유리판이 없고, 몇 개의 모드를 제공하고 수동모드에서는 와트를 조절할 수 있다. 다만, 골고루 익혀지는 느낌은 없어서 음식의 위치를 변경해서 다시 익혀야 할 때가 있었다.

발뮤다의 많은 제품들이 조작을 하거나 완료되면 멜로디가 나오는데 더 레인지도 다이얼과 버튼 조작을 할 때나 조리가 시작, 진행, 완료 시 효과음이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를 이용한 효과음들인데 좋은 음질은 아니더라도 조작과 조리 과정을 꽤나 즐겁게 해준다. 에어프라이어 없어지면서 불편한 점이 생겼지만 오븐 기능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만의 만족감을 얻게 되었다. 단순한 내부 구조로 청소가 용이하다. 거대하지 않은 전자레인지 겸 오븐을 구입한다면 추천할만하지만 좀 더 많은 기능을 원한다면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추천할 것 같다.

음…

삼성이나 엘지와 같이 앱을 제공하지 않는다. 발뮤다 레시피가 따로 있을까 찾아봤는데, 단순한 추천 레시피라서 조금 실망이다.
https://www.balmuda.co.kr:14037/range/recipes

더 브루

10년이 넘도록 네스카페와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를 마셨다. 손이 많이 가는 드립 커피 머신으로 바꾸는게 좋은 선택일지 고민이 있었지만, 커피를 직접 갈고 내려마시는 근사함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보통의 드립 커피 머신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꽤 근사한 오브제 같다. 오픈 드립 방식이라서 커피 내리는 과정이 모두 노출되므로 누군가 커피를 내려주는 느낌이 든다. 더 레인지와 같이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다. 더 레인지처럼 하나의 악기로 통일된 사운드는 아니지만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전원을 켜거나 커피가 완성될 때에는 짧은 프레이즈 나오고 커피가 추출되는 동안은 시계 추의 똑딱 소리가 나오는데 이 단순한 소리와 커피가 내려지는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린다. 발뮤다는 이런 재미있는 사용자 경험을 잘 만들다. 더 브루가 얼마나 맛있게 커피를 내려주는지 비교를 할 수 있는 기준은 없지만 눈과 귀, 코로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네스프레소의 귀를 괴롭히는 진동음에서 더 브루의 근사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뜸 들이고 추출하는 과정 중에 최적의 물의 온도로 계속 바꾼다고 한다. 커피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들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물을 드립하는 상단 원형부의 크기가 조금 더 넓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디자인했겠지만 커피의 양이 많을 때 바깥 부분의 커피까지 뜸 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물 붓는 양과 속도를 잘 튜닝했다고 하는데 사람이 내리는 것 같이 물 붓는 양과 속도가 계속 변경된다.

레귤러, 스트롱, 아이스 모드가 있어 그에 따라 물의 양과 바이패스 양이 달라진다. 물통은 500ml까지 들어가며 레귤러 세 컵으로 내리면 물을 거의 사용하게 된다.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부분은 스크래치가 잘 생긴다.

커피의 맛은 원두의 종류와 컨디션, 분쇄, 내리는 방법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기기를 기준으로 커피맛을 평가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커피 전문가가 아니다.

발뮤다에서 판매하는 커피밀은 149,000원이다. 개인적으로 비싸다고 생각되지만 이보다 비싼 핸드 그라인더도 많다. 매일 아침 굳은 몸뚱어리를 이끌고 직접 커피를 갈 자신이 없다. 적당한 가격의 윌파 전동 그라인더를 사용하고 있다. 전동 그라인더에 커피를 넣은 뒤 갈고, 드리퍼에 필터로 넣은 뒤 커피를 옮기는 것조차 매우 귀찮다. 맛도 중요하지만 내 게으름은 전동 그라인더 이상의 행위를 허용하지 못할 것 같다.

가성비 제품도 있지만 이보다 더 비싼 제품들도 많다. 구입 결정에 있어 취향은 중요한 요소이다. 발뮤다 제품이 끝내주는 성능은 아니겠지만 만족스러운 디자인에 기기의 기본적인 목적을 넘어 감성적인 만족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작은 크기, 괜찮은 디자인, 감성 몇 스푼이 중요하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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