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에피소드

공항은 각자의 색과 냄새를 갖고 있다. 타국에 도착해 두꺼운 비행기의 문을 벗어나면 출발했던 공항과의 차이를 한숨에 느낀다. 그 색과 냄새는 설렘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과 버무려져 자신만의 기억으로 새겨진다.

경유 공항은 종착지의 안도와 달리 긴장의 연속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경유 공항에서 에피소드가 생긴다. 어쩌면 나만 유난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2019 여름, 경유 공항인 밴쿠버에 도착했다. 색과 냄새가 제법 익숙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은 뒤 타임테이블을 살폈다.

‘Cancelled’…

몇 번을 다시 확인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러 번 물어 에어캐나다의 임시 창구에서 새 티켓과 공항 식사 바우처를 받았다. 도착 시간은 지연되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확인증과 같은 새 티켓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칠레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경유지인 페루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열차와 같이 경유지에서 일부 승객이 내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손님이 타면 비행기는 다시 이륙을 한다.) 휴대폰을 켜니 법인카드 사용 문자가 쏟아졌다. 내가 남미에서 북미로 가는 사이 카드를 소지한(혹은 훔친) 누군가가 런던으로 가서 카드를 사용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용 금액은 200파운드 정도였고 나는 바로 카드를 정지시켰다.


브라질을 경유할 때에는 수화물 검사에서 목에 걸고 있던 가죽 펜케이스를 칼로 의심을 받아 내주었다. 볼펜이기에 돌려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대답은 포르투갈어로 돌아왔다. 아끼던 펜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괘심하다.


3년 전 밴쿠버 공항, 입국심사가 끝난 줄 알았는데 별도의 오피스에서 수화물 검사와 인터뷰를 받았다. 편도 티켓으로 입국한 데다가 6개월을 체류하겠다고 하니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피스의 분위기는 문밖 여행자들의 분주함과 달리 고요함과 긴장감이 넓은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보내주지 않아 긴장감이 이마까지 차올랐다. 결국 캘거리에 있는 아내와 확인 통화를 한 뒤 보내주었다. 최악의 상황을 겪은 뒤로는 두려울게 없어진걸까 캐나다 입국심사가 한결 편안해졌다. 오히려 별도 오피스로 가는 여행자를 볼 때 그들을 걱정해주는 여유마저 생겼다.


무리한 경유 스케줄과 연착으로 LA에 도착하니 이미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는 땅을 떠난 뒤였다. 오래된 느낌이 물씬하고 미국 색채가 강렬한 공항 로비에서 공항 직원들에게 티켓팅 방법을 여러 번 물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새 티켓을 구입했지만 LA공항은 불친절한 곳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올여름에는 캘거리에서 2시간이나 출발 지연이 되는 바람에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경유 공항인 나리타에서 40분 안에 수화물 검사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12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두 아이를 케어하느라 엉망인 컨디션으로 잠이 든 아이들을 아내와 안고 내달렸다. 높은 습도가 몸을 감쌌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다리가 풀릴 즈음 방송에서 아내와 내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며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수 또는 불가항력으로 인해 짧은 시간 머무는 경유 공항에서의 에피소드가 쌓여간다. 어쩌면 나만 유난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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