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취향을 풍길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부터 사소한 양말 하나까지 물건을 통해 그 사람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취향을 찾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는 취향이 숨어있다.
보통의 또래 남자치곤 가방이 많은 편이다. 두 어깨를 이용하는 백팩보다는 브리프케이스나 헬맷 백, 메신저 백을 좋아한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백팩을 찾게 되었다. 바버샵의 맙탑을 데일리로 사용하기에는 크고, 최근에 주로 사용한 코치 차터 백팩은 여러 사정으로 정이 떨어져 새로운 백팩을 찾게 되었다.
가방의 세부 카테고리인 백팩으로 검색해도 수천 개의 제품 사진들이 쏟아진다. 무한에 가까운 정보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높은 가격순으로 정렬을 해 보면 쟁쟁한 명품 브랜드들이 노출된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눈에 띄더라도 내 잔고에 한계가 있어 소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눈에 명품 브랜드 티가 나는 물건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내 예산에 맞는 가방을 탐험해야 한다. 포기라도 빠르면 좋겠지만 내 취향의 물건이 나오지 않으면 불편하더라도 버틴다. 이렇다 보니 취향을 고집하여 물건을 구입하는 데에 꽤 긴 시간이 소요될 때가 많다.
인케이스나 샤오미의 기능성 가방은 음… 아무리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지만, 편리함과 미학 사이 그 어딘가에서 최소한의 우아함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키라고 하지만 작고 뚱뚱한 보통의 아저씨인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존엄이 있다. 지하철에서 쉽게 눈을 돌리면 볼 수 있는 직장인들의 만다리나덕이나 투미, 샘소나이트의 제품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나이키나 노스페이스와 같은 브랜드는 너무 캐쥬얼하다. 요시다 포터의 탱커 백팩과 몽블랑의 사토리얼 백팩에도 관심을 갖었지만 계절과 스타일의 제약이 커 보였다. 디자인만 본다면 이스트팩이나 잔스포츠와 같은 타임리스 디자인의 가방을 좋아하지만 이런 모양의 가방이 학생용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가죽 제품이어야 한다. 블랙이나 브라운이라면 어떤 스타일의 옷에도 잘 어울린다. 여러 명품 브랜드에서는 꾸준히 이런 디자인의 가방을 판매하고 있지만 대부분 크기가 작아 덩치가 있는 남성의 등에 붙으면 아내의 가방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이전에 쓰던 코치 백팩도 책가방 형태인데 사이즈가 아쉬웠다. 마음이 동하는 마땅한 가방 찾기가 어렵다. 확고한 취향은 있으나 마음이 동하는 가방은 없고 몇달간의 탐험으로 지쳐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 탐험은 가족의 도움으로 끝이 났다. 장모님께서 선물 박스를 보내주셨다. 태평양을 건너 온 박스 속에는 나이키의 상의 여러 벌과 해마다 보내주시는 에어포스 1 스니커즈, 그리고 몇 달간 찾던 모습의 백팩이 있었다. 형태와 크기, 색상, 가죽의 광택과 질감까지 일치했다. 랩탑을 위한 별도 포켓이 있어 외부 회의에서 가방을 전체 열고 닫는 불편함이 없고 내부 수납 시스템도 전에 쓰던 코치 백팩에 비해 훌륭하다. 바깥 양측면의 포켓은 지갑과 에어팟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포켓이 있다. 몸에 닿는 등과 어깨 끈은 메쉬 소재로 되어있어 여름에 사용하기에도 문제없어 보였다. 한국에서 팔지 않아 찾지 못했던 걸까.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다면 선택했을 가방이다.
내 취향 때문에 장모님은 아내와 많은 얘기를 나누셨을 테고 발품 파시면서 온갖 가방의 사진을 찍어 보내셨을 거다. 보통의 선물 이상의 가치다. 그렇게 고집했던 취향에 의미까지 부여된 가방 하나가 생겼다. 다음번 처가댁에 갈 때에는 이 가방을 메고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